매번 철거 문제로 맞서는 여기 마을 사람들에게 따듯했던 건 이 연탄들뿐이었다고 그 시절의 나는 생각했다. 그런 이유로 다 쓰고 남은 재들은 마을의 이곳저곳에 함께 장식되었고 동시에 든든한 친구 같아 보이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이것들이 마을의 아주 예쁜 인테리어 소품이었다는 생각도 한다. 사진이라는 것을 막 제대로 한번 찍어보고 싶어 했던 열아홉,의 나에겐 그것들이 꽃보다 아름다웠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들의 마음을 존중하고 싶었다. 오늘 같이 비가 내리치는 날에도 몸에 카메라 두 대씩이고 올라가 기어가며 눕고 누어서도 한참을 바라보았던 풍경들. 또 한편으로는 이들이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과 나를 이해하려 했다. 이 작업을 했을 당시 나의 오랜 친구는 안도현 시인의 연어라는 책을 선물하였다. 연탄을 찍는 나를 보면서 연탄 시인이라 불리는 그의 ‘너에게 묻는다’라든지 ‘연탄 한 장’을 선물할 법도 한데 ’연어’를 선물한 이유에 대해 오래 고민했다. 책 속에는 이런 문장들이 있었고, 책을 덮고 나서는 이 사진들이 그 시절 누구 하나 공감시키지 못하더라도 나는 괜찮을 거라 다짐했다.


/ 언젠가 강이 말해주었어. 인간은 낚싯대를 든 인간과 카메라를 든 인간이 있다고 말이야.

/ “카메라가 뭐지?" "시간을 찍는 기계라고 했어."

/ 카메라를 든 인간은 틀림없이 연어를 옆에서 볼 줄 아는 인간들일 거야.

/ “넌 아버지가 없니?" "아버지는 있었지만 얼굴을 몰라. 연어는 알을 낳은 뒤에 모두 죽어버리거든. 우리를 키우는 것은 강이거든." "그럼 강을 아버지라고 부르면 되겠네, 뭐." "그래, 그래." 어린 인간은 은빛 연어를 위로해주고 싶은 모양이다. "이제 가봐야겠어." "조금 더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예쁜 꼬마는 못내 아쉬워하는 눈치다. "꼬마야, 부탁이 하나 있어." "뭔데?" "너도 크면 꼭 카메라를 들고 살았으면 좋겠어. 낚싯대 대신에 말이야." "그래, 잊지 않을게. 안녕." 하고 어린 인간이 손을 흔든다. "고마워. 안녕." 하고 은빛 연어는 상류를 향해 지느러미를 흔든다.